월남사 폐사지에서 by 별곡

월출산 남쪽 금릉 경포대 계곡 밑, 남도답사 1번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는 월남사 폐사지가 있다. 마을 입구를 지나 폐사지를 찾아가는 길 옆 녹차 밭에는 스프링클러가 맹렬하게 물을 뿜고 있다. 새 잎이 나기 시작한 녹차나무는 며칠 전 내린 봄비가 좀 부족했나 보다.



곡우(穀雨)가 멀지 않았으니 이미 찻잎을 땄는지도 모르겠다. 곡우(穀雨) 전(前)에 딴 찻잎은 우전차라 하여 가장 좋은 차로 치지 않던가. 오른쪽으로는 파종을 하기 위해 갈아엎은 밭이 검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누워 있다. 밭의 흙은 이제 새로운 생명을 기를 것이다. 한겨울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푸른 보리밭도 보인다.


탑 앞에 이르렀다. 덩그렇게 선 석탑 너머로 엷은 하늘을 이고 우뚝 솟은 월출산 천황봉이 보인다. 월출산의 암봉들은 봄비에 씻겨 깨끗하다. 천고(千古)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저 산은, 절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보았을 터. 광대무변한 우주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왜소한 것이냐. 그래서 천 년을 버텨온 저 탑이 오늘은 더욱 엄숙하게 느껴진다.



무너진 돌담 옆, 이제는 고목이 된 동백나무에서 성긴 빗방울처럼 동백꽃이 후두두 떨어진다. 한 생명이 간다. 폐사지에서 보는 꽃의 죽음은 또, 얼마나 장엄한 것이냐! 영랑의 시구(詩句)처럼 ‘찬란한 슬픔’의 봄인 것을.







월남사 폐사지에서

-청산별곡

억겁(億劫)을 달려온
바람이
탑을 감돈다.

엷은 하늘에
깃털처럼 가벼운 구름이
흐르고

그 때, 동백꽃 몇 송이
후드득 진다.

모로 누운 동백꽃은
부처가 되고 나한( 羅漢)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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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6/04/15 10: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6/04/17 09:4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시인 2006/04/15 20:21 # 답글

    정말 좋네요.^^
  • 청산별곡 2006/04/17 09:48 #

    고맙습니다.^^
    폐사지의 그 쓸쓸함이
    가슴에 와 닿더군요.
  • 산수유 2006/04/17 21:21 # 삭제 답글

    장엄한 월출산과 천왕봉에 눈길 주지도 못하고
    페사지의 슬픔만 노래하다 갑니다.
    천년을 버터온 탑에서도........

    무너진 돌담 옆 고목이 된 동백나무에서
    성긴 빗방울처럼 동백꽃이 후두두
    한 생명이 간다.
    영랑의 시구처럼 찬란한 슬픔의 봄인것을 ㅠㅠ
    글귀가 가슴이 아프고 쓰려옴을 느낌니다.
    페사지의 슬픔이 한잎두잎 붉은 눈물로 바람따라 흗어지니 쓸쓸함은 더욱 크게 와닿습니다.
  • 청산별곡 2006/04/18 09:40 #

    동백꽃은 참으로 깨끗하게 지는 꽃입니다.
    꽃송이 채 떨어진 동백꽃 진 자리,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릿합니다.
  • 고인돌 2006/04/18 10:39 # 답글

    월남사지모전석탑!
    답사때 그리고...
    석탑공부하면서 많이 듣던 이름이죠.

    작년 국토대장정때 들렸었는데
    ...학생들은 못보았겠지만...^^

    폐사지 옆의 농가에 커다란 황소 보셨나요^^

    평탄한 대지로 보아 사찰의 규모도 대규모였을텐데...
    복원이 가능할 지 모르겠네요.

    좋은곳에 다녀오셨습니다.^^
  • 청산별곡 2006/04/19 22:05 #

    석탑의 규모로 보았을 때는 상당히
    큰 절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고인돌님은 박물관에 계시니 이런 쪽에
    관심이 많으시겠군요.^^
  • witan 2006/04/18 18:39 # 답글

    제대로 된 남도 여행은 언제나 할 수 있을지.....
    별곡님의 글과 사진을 볼 때마다 되뇌여 봅니다.^^;

    녹차밭 사진, 보리밭 사진 그리고 천황봉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사찰과 석탑 사진......멋집니다.^^
  • 청산별곡 2006/04/19 08:45 #

    고맙습니다. 시간이 문제지요.
    남도의 아름다운 풍광들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요. 그전에 남도 여행을 하심이.^^
  • 빈바구니 2006/04/18 23:13 # 답글

    별곡님 글... ^_____^
  • 청산별곡 2006/04/19 08:47 #

    소이부답(笑而不答)...^_____^
  • 樂山(락산) 2006/04/29 20:59 # 답글

    이버 남도 산행 하면서 월출산은 경포대에서 오를려
    했는데 입산금지라 해서 천황사에서 올랏슴니다.
    경포대로 갓ㅅ으면 월남사 폐사지도 몰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쉽네요.
  • 청산별곡 2006/04/30 08:09 #

    국립공원 봄철 산불방지기간이라
    경포대 쪽은 폐쇄 되었을 것입니다.
    월출산은 천황사 쪽에서 올라야
    조망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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