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성제봉(형제봉) 산행기 by 별곡

*일시 : 2007년 7월 8일 일요일
*날씨 : 흐림
*함께 산행한 사람 : 송백부부, 산퉁, 현정, 나
*산행코스 : 청학사(120분)-능선 삼거리 이정표(5분)-우측 북봉(15분)-성제봉(15분)-헬기장(15분)-
강선암 갈림길(15분)-신선대(45분)-봉수대(15분)-통천문(20분)-고소산성(20분)-한산사
(능선 삼거리 이정표는 우측으로 성제봉을 가리키나 그곳은 북봉이고 이정표에서 좌측 신선대 방향으로
가야 실제 정상석이 있는 성제봉이다.)


물길과 꽃길의 고장 하동의 악양면은, 장강(長江)처럼 탕탕하게 흐르면서 그 강가에 수많은
민초들의 삶의 기쁨과 슬픔을 풀어 놓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평사리 소나무

유장한 흐름의 섬진강을 등지고 악양 벌을 바라보면 우측으로는 구제봉에서 칠성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좌측으로는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삼신봉을 거쳐 내려오는 지리산 남부 능선이
상불재에서 갈라져 한 줄기는 불일폭포를 거쳐 쌍계사 쪽으로, 또 다른 줄기는 시루봉을 거쳐
성제봉(형제봉)으로 이어지는데 이 두 능선이 마치 사람처럼 팔을 벌리고 악양 벌을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성제봉 능선에서 본 평사리와 악양벌. 아쉽게도 날씨가 종일 흐릿하여 멋진 풍경을 볼 수 없었다.


산등성이에서 바라보면 이 좌우측 산자락에는 30여 개의 마을이 흩어져 있다.
또한 이곳은 얼마나 풍요로운 곳이었던지, 예전에는 ‘거지가 365일 한 집 한 집 밥을 얻어먹고
다녀도 또 얻어먹을 집이 세 집은 더 있다’는 말이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악양이라는 이름도 중국의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악양 벌에 있는 습지 이름도 동정호(洞庭湖)다.

성제봉 산행은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에 있는 한산사, 악양면사무소를 지나면 나오는
정서리의 강선암 표지석, 매계리 노전마을 위에 있는 청학사가 산행 들머리가 된다.

우리 일행은 청학사를 기점으로 해서 한산사로 하산했다. 이 코스가 성제봉 코스에서는 가장 긴 산행길이다.


산행 들머리 청학사. 청학사에 가기 위해서는 노전마을 입구에서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야 한다.
버스는 노전마을 입구에서 하차해야 하지만 승용차는 청학사 주차장까지 갈 수 있어 산행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노전마을 입구에서 산행 들머리 청학사까지는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올라야 한다.
대형버스는 노전마을 입구에서 내려 30여 분 이상을 걸어야 하지만 승용차라면 청학사 주차장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 그만큼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청학사 주차장에는 나무 장승이 서 있고 절 마당 조그마한 연못에는 하얀 수련이 앙증맞게 피었다.
청학사를 지나 울창한 대숲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른다.

대나무가 좌우측으로 울창한 제법 넓은 길을 걷다가 산길로 접어든다.


청학사를 지나면 울창한 대숲 사이로 제법 넓은 등로가 펼쳐진다. 이곳을 지나야 비로소
산자락에 난 산길로 접어든다.

이어서 좁은 돌길과 산죽 무성한 길을 따라 조금씩 고도를 높여 간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장마철이라 숲 속은 물안개가 가득하고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하다.

사람 통행이 뜸한 길에는 거미줄이 많아 이것이 자꾸 얼굴에 엉겨 붙는 바람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게다가 좁은 산길에 무성한 산죽과 잡초에는 물방울이 가득 맺혀 있어 바짓가랑이가 후줄근하게 젖었다.

바짓가랑이뿐만 아니라 발걸음을 뗄 때마다 온몸은 흐르는 땀과 물기로 범벅이 되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차츰 잦아들 즈음에 너덜지대를 지나 샘터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한다.


너덜지대.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 능선 삼거리까지 계속되는 오르막길에서 체력 소모가 많았다.

여기서부터 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10여 분 정도 오르면 커다란 바위들이 널려 있는 암석지대가 나온다.
이곳의 물기를 머금은 바위들이 몹시 미끄럽다.

곧이어 물통이 있는 쉼터가 나오고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시야가 터진 곳이 나오는데
물안개가 가득하여 코앞도 보이지 않는다.

능선 삼거리에 닿기까지 계속해서 힘든 오르막길이다.
청학사를 출발한 지 2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능선에 닿는다.

이정표는 우측으로 성제봉 0.17km를 가리키고 있다.
이정표 상 성제봉이라는 봉우리에는 아무 표시도 없고 다만 성제봉 철쭉 안내판과 깃대가 세워져 있고,
깃대 끝에서는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이 봉우리가 북봉(北峰)이다.


성제봉 정상

다시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와 5 분여 정도 길을 따르면 비로소 성제봉(聖帝峰)이라는 정상석이
서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이곳이 남봉(南峰)이다.

사실 형제봉은 성제봉인데 북봉(北峰)과 남봉(南峰)이 서로 이마받이하여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두 형제처럼 다정하게 보여 형제봉이라고 한단다.

‘형’이란 말의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가 ‘성’이어서-형님을 성님이라 부른다-형제봉을 성제봉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상석에 쓰인 한자는 형의 사투리 성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 ‘성인 성(聖)’자였다.


성제봉 능선의 헬기장. 조망이 좋다고 알려졌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조망을 할 수 없었다.

성제봉에서 내려오면 바로 길옆에 묘가 보인다.
이곳은 양지바르고 앞이 탁 트여 묏자리로는 좋은 곳으로 보인다.

이 높은 곳까지 조상을 모신 후손들의 정성을 갸륵하다고 해야 할지. 이어서 헬기장이 나온다.

조망이 좋다고 하는 헬기장에 서면 악양면 일대와 섬진강이 보인다고 하는데
안개가 자욱하여 조망을 할 수 없다.


성제봉 철쭉 군락지. 제법 넓은 철쭉 군락지는 해마다 봄이 되면 장관을 연출할 것이다.


나리꽃

까치수영. 철쭉 군락지에는 철쭉 대신 나리꽃, 까치수영, 돌양지꽃, 기린초 등이 피었다.
산행 중에 들꽃을 만나는 것은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헬기장을 지나면 산 사면에 꽤 넓은 철쭉 군락지가 펼쳐진다. 철쭉꽃이 피는 봄날이면 이곳은
일대 장관을 연출할 것이다. 지금은 안개가 이곳을 점령했다.

철쭉 군락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철쭉꽃을 대신하여 까치수영, 나리꽃, 돌양지꽃, 기린초 등
들꽃이 피어 산꾼들을 반긴다.


신선대 오르는 철계단과 구름다리

내리막 길 끝에서 강선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철쭉 제단 앞 이정표는 좌측으로 강선암까지 2.2km를 가리키고 있다.

안개 속에 신선대에 오르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철다리를 지나니 바로 앞 신선대에 오르는
철계단이 보이고 그 위로 구름다리가 보인다.

급경사 지대를 내려가 철계단 앞에 섰다. 한 발 한 발 철계단을 밟고 오르니 구름다리가 눈앞이다.
사람이 지날 때마다 출렁거리는 이 구름다리는 월출산이나 대둔산의 구름다리만큼 길지 않다.


성제봉 신선대의 구름다리

산골짜기를 휘감은 안개자락이 바람에 쓸려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가 어느새 밀물처럼
밀려들어 오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산 밑으로는 이제 안개가 조금 벗겨져 희미하게나마 조망을 할 수 있다.

악양면 일대와 산등성이 너머로 누런 광목 천 조각처럼 늘어진 섬진강 줄기가 보인다.
구름다리를 건너니 신선대다.

이어서 길은 커다란 암벽 사이를 지나면서 소나무 능선 길이 이어진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능선 길을 따라가면 안부가 나온다.

좌측으로 하산길이 있지만 그대로 토사 방지 계단 길을 직진하여 올라채면 돌무더기가 나오는데
이곳이 예전에 봉수대였던 곳이다.


통천문

봉수대를 지나면 통천문이 나온다.
통천문은 배낭을 멘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바위 문(門)이다.

통천문을 빠져 나와 전망 좋은 곳에 서면 발밑으로 풍요로운 악양벌과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정면으로는 장맛비 때문에 탁해진 섬진강 강물이 모래톱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펼쳐진다.


통천문을 빠져나와 전망 좋은 곳에서 조망한 평사리의 토지 세트장.


섬진강의 물빛이 장맛비 때문에 탁하여, 마치 누런 광목천을 펼쳐 놓은 듯이 보였다.


고소산성. 산성 위 소나무는 저곳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악양벌을
말 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을 것이다.


한산사에 도착하면 산행은 끝난다.

이어서 평사리 최참판 집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하면 대가야가 쌓았다는 고소산성에 닿는다.
산성 위 돌길을 따라 내려가니 한산사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한산사에 도착하면 산행은 끝난다.

이제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로 내려가 TV 드라마로 방영된 토지의 세트장을 구경하면 된다.
한산사에서 내려와 평사리 토지 세트장을 찾았다.


토지의 세트장. 화면에서만 그럴듯하게 보이는 다른 드라마의 세트장과는 달리 토지의 세트들은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등장인물들이 살았던 집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영화나 TV 드라마의 세트장들이 대부분 화면에서만 그럴 듯하게 보이게끔 만들어진 것들에 비하면
토지의 세트장은 여느 세트장과는 달리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게끔 만들어졌다.


최참판댁 별당. 서희 어머니인 별당아씨는 시동생인 구천이(김환)와 사랑에 빠져 결국
야반도주를 하고 만다.

토지는 최근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드라마로 변용되었다.

토지는 우리 문학사의 거대한 산맥이다.
토지가 있어 우리나라도 비로소 대하소설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사리 문학관 내부. 평사리 문학관에는 하동을 무대로한 문학 작품들을 소개해 놓았다.

“1897년의 한가위-”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토지는 1969년 현대문학에 첫 연재를 시작한 이후
장장 26년이라는 연재 기간과 3만 장이 넘는 원고지 매수로 작가가 그려낸 한국 근대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피고 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운명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대서사시다.


섬진강. 그 이름만 들어도 우리는 서정적인 감정에 젖는다.

별당아씨와 구천이의 야반도주, 그들을 쫓던 최참판 댁 당주 최치수, 아버지와 할머니 윤씨 부인의
죽음으로 바람 앞에 등불처럼 선 어린 서희, 몸종인 봉순이, 나중에 서희와 결혼하게 되는 길상,
그리고 헛된 욕망의 제물이 되어 버린 귀녀와 김평산 등등 생생하게 묘사된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사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서 손에 땀을 쥐고 읽었던 토지의 그 감동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산행과 문학 기행을 함께 할 수 있는 하동 성제봉 산행은 일거양득(一擧兩得)이다.

덧글

  • 碧泉(벽천) 2007/08/09 10:23 # 답글

    아~~~
    평사리...
    제가 생각하기에 박경리의 "토지"는 펄벅의 "대지"에 버금가는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좋은 작품이지요.

    별곡님의 기행문을 읽으면서 깊은 감흥에 빠져 봅니다.
    사진도 참 좋습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세요.
  • 청산별곡 2007/08/10 10:56 #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유난히도 비가 잦군요.
    비 피해는 없으시죠?

    '토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碧泉(벽천) 2007/08/12 17:07 #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서울은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그래도 시원해서 좋습니다.
    ^_^
  • 시인 2007/08/09 12:56 # 답글

    토지 촬영지가 거기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또 실제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었다니 더 놀랍네요.
    정상부근 구름다리도 멋지고요.^^
  • 청산별곡 2007/08/10 10:57 #

    구름다리가 좀 짧아서 아쉽습니다.^^

    다른 세트장들은 대부분 합판 같은 것으로 엉성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이곳은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게끔
    만들었더군요.^^
  • 보석공주 2007/08/10 03:04 # 답글

    토지의 셋트장인 초가집과 최참판댁 별당이 맘에 듭니다.
    하동까지 섬진강이 흐르는데...
    곡성에 살았으면서도
    섬진강줄기 구례까지만 가봤습니다.
  • 청산별곡 2007/08/10 10:59 #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곡성의 압록유원지는 유명하지요.
    곡성과 구례를 거쳐 하동까지 이어지는
    섬진강변 길은 우리나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길입니다.^^
  • 고인돌 2007/08/13 16:30 # 답글

    ^^
    일거양득인 성제봉 산행기 공짜로 잘 보고 갑니다.

    요즘 날씨가 어째 장마철보다도 비가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오네요.
    이젠 좀 그치겠죠?^^
    좋은 산행, 좋은 여행 많이 다녀오셨길 바랍니다.
  • 청산별곡 2007/08/19 11:18 #

    지리산 다녀왔습니다. ^^
    예전에 고인돌님이 올랐던 새재까지
    긴 산행을 하고 왔습니다.
  • 버그하우스 2008/07/01 20:00 # 답글

    6월 네째주에 다녀온 성제봉은 악천우의 기상조건이어서 아름다운 주위경관을 전혀보지를 못해 많이 아쉬웠었는데..
    덕분에 제가 다시 성제봉에 선 기분입니다..
    덕분에 맘 속의 산행 즐거웠습니다..
  • 청산별곡 2008/07/07 09:09 #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갔을 때도 날씨가 썩 좋지 못해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많이 보지 못해 아쉬웠답니다.

    늘 즐거운 산행하시길.^^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