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기(거림~중산리) by 별곡

지리산의 어느 봄날, 산상화원을 걷다

#산행일시:2013519일 일요일

#날씨: 흐리다 갬

#누구와:목산 산우들과 함께

#산행코스:거림(130)-세석대피소(80)-장터목대피소(60)-천왕봉(160)-중산리탐방지원센터



 
천왕봉 일출


해마다 지리산을 찾지만
, 찾을 때마다 지리산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리산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변만화(千變萬化).

지리산은 어느 코스를 어느 계절에 오르느냐에 따라 변화무쌍한 산색(山色)을 보여준다.
그러니 지리산의 모습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지리산에 대해 산행기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 글들을 썼다.
그 글들을 읽을 때마다 지리산에서 본 풍경과 느낌이 생생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그 추억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 아들과 함께 한 겨울 지리산 종주 산행이다.
동네 뒷산도 안 가본 녀석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종주했으니, 그것도 겨울에 말이다.

지리산은 나에게는 추억을 담아 놓은 보물 상자나 마찬가지다.
때로 현실의 삶이 고되고 힘들 때, 그 보물 상자를 열고 기억의 편린(片鱗)들을 더듬다 보면 어느덧 마음은 아련해진다.
 

각설하고, 이번에 산우(山友)들과 함께한 지리산 산행은 거림을 들머리로 하여
세석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하는 코스로 정하였다
.



거림탐방통제소


지리산 국립공원 탐방안내 설명에는 이 코스를 산행거리
18.9km, 12일 코스로 안내해 놓았다
.
사실 이 코스를 하루에 마치는 것은 좀 무리라는 생각이다
.

하지만 산행 경력이 많은 산우(山友)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라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
거림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전 10시가 다 되었다
.

해가 많이 길어졌지만 최소한 오후 6시 이전까지는 산행을 마칠 생각이었다
.

거림마을을 지나면 조그마한 공원지킴터 초소 건물이 나온다
.
이곳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되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 북해도교까지는 계곡의 물소리를 벗 삼아 가는 길이다
.

길도 수월한 편이다
.
이제 북해도교를 지나면 길은 서서히 가팔라지면서 잠시 계곡과도 멀어진다
.



북해도교


전날 비가 내려서인지 숲은 가득 물기를 머금고 있다
.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숲속은 몽환적이다
.

비 오듯이 땀을 흘리며 고도를 높여 가는 길에는 듬성듬성 연분홍 철쭉이 곱게 피어서
힘들어 하는 산꾼을 향해 발그레 미소를 짓는다
.



거림에서 세석가는 길


올해는 꽃이 좀 이르게 피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
예전 지리산 철쭉은 5월 말경에나 피었는데 벌써 철쭉이 피었으니 말이다
.

이윽고 세석교에 이르면 멀어졌던 계곡과 다시 만난다
.
세석대피소까지는 편안한 길이 이어지는데, 길가에는 철쭉 대신 털진달래가 피었다
.



털진달래핀 세석평전


여느 진달래와 달리 털진달래는 유난히도 색감이 진하다
.
세석대피소에 닿았다. 2시간 10분 쯤 걸렸다
.

세석대피소에 오면 언제나 마음이 푸근해 진다. 세석평전은 이제 막 연둣빛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하였고
,
그 사이사이로 털진달래가 강렬한 색감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듯이 피어 있다
.



세석대피소


세석평전


시기상으로 지리
10() 중 하나인 세석철쭉을 보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대신 오늘 지리산은 우리에게 털진달래가 만개한 풍경을 보여 준다
.

참으로 복() 받은 산행이다
.
세석평전은 평화롭다
.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한가롭게 만드는 묘한 마력 같은 것이 있다
.
먼 길을 떠나기 위해서 짧은 점심시간을 갖고 곧바로 촛대봉을 향해 오른다
.

촛대봉 오르는 길 중간쯤에 있는 세석습지에는 노란 동의나물이 지천으로 피었다
.
촛대봉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니 구름이 가득하여 천왕봉은 그 모습을 쉽사리 보여 주지 않는다
.



동의나물이 지천으로 핀 세석습지


뒤를 돌아다보니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 아늑한 안부 사이에 펼쳐진 세석대피소와
그 주변의 봄 풍경이 참으로 그윽하다
.



촛대봉 오름길에 본 세석평전과 대피소


촛대봉을 내려와 발걸음을 재촉한다
.
이제부터는 조망처가 나올 때마다 그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지리산의 찬란한 풍경을 즐겨야 한다
.



촛대봉

세석에서부터 천왕봉까지
, 나는 이 길을 감히 지리산의 하이라이트라 부른다
.
지리산을 종주하다 보면 노고단에서 세석까지 오는 길에는 조망처가 그리 많지 않다
.

그러다보니 좀 답답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길은 곳곳이 지리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조망처가 있어서
지리산의 가장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

연하선경(煙霞仙境)의 그 꿈길 같은 길에는 안개가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
어쩌면 옛 선인(先人)들이 말한 별유천지(別有天地)가 이런 풍경이 아닐는지
.



연하선경


촛대봉을 떠난 지
1시간 20여 분 만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한다
.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웬일인지 오늘은 한가하다
.

아마 어제 날씨가 궂어서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취소했나 보다
.
천왕봉을 거쳐 하산하기에 벅찬 산우(山友)들은 이곳에서 중산리로 바로 하산하도록 한다
.

제석봉으로 향한다
.
내가 처음 지리산에 올랐을 때 가장 감동 받았던 풍경이 바로 제석봉의 고사목 풍경이다
.

인간의 실화(失火)
로 고사목이 된 나무들이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풍경은
어느 시인의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영혼이라는 시구를 떠오르게 했다
.



제석봉 풍경


제석봉에서 한참을 머물다 통천문으로 향한다
.
지리산에서는 신선들마저도 통천문을 거치지 않고서는 하늘에 오를 수 없다고 한다
.

통천문을 지나 막바지 가풀막진 길을 올라채자 드디어 천왕봉이다
.
발밑으로는 구름바다다
.





천왕봉 가는 길


오늘 지리산은 휘하
(麾下)의 모든 산들을 구름바다로 덮어 버렸다.
산우(山友)들은 지리산 정상석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

우화등선(羽化登仙)! 천왕봉에 오를 때마다 나는 매번 이런 기분을 느낀다
.
, 지리산의 장대(壯大)하고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아름다움이여
!



천왕봉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 하는 길은 경사가 급한 돌길의 연속이다.
이 길에서 다들 한번쯤은 무릎의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

개선문을 지나 법계사에 도착한다
.
로타리대피소 바로 위에 있는 법계사는 수난을 많이 겪은 절이다
.



법계사


구한말에는 항일의병들의 근거지여서 일본군의 방화에 불타 버렸고
,
해방 후에는 빨치산들의 수중에 넘어가자 토벌군들이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

지리산은 예부터 사연 많은 산이다.
그 넓디넓은 산자락에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어둠처럼 스며들어와 살았을 터
,
지리산은 그 사람들이 토해 놓은
()과 한숨과 아픔을 보듬고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

그래서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다.



칼바위



중산리탐방지원센터


중산리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다
.
오늘 나는 지리산의 또 다른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물감이 풀리듯이 먹빛 어둠이 서서히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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