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by 별곡

천자암과 불일암을 찾아서

일시: 2013413일 토요일

누구와: 나 홀로

날씨: 맑음

산행코스: 송광사 매표소(15)-송광사(10)-수석정 삼거리(40)-운구재(40)-천자암(50)-
배도사대피소(10
)-보리밥집(20)-작은굴목재(30)-장군봉(20)-장박골 정상(20)-
장박골 삼거리(15)-786(60
)-불일암(15)-매표소



송광사 가는 길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조계산은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와 삼보(三寶) 사찰 중 하나인
승보사찰 송광사를 동
()과 서(西)에 거느리고 있는 남도의 명산이다
.

조계산 산행은 송광사나 선암사를 들머리로 하여 동서(東西)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산행코스다.
이 동서(東西)
코스는 아름다운 절집으로 손꼽히는 두 절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쌍향수가 있는 천자암이나 법정 스님의 맑은 무소유
(無所有)
의 향기가 오롯이 남아 있는
불일암을 넣기에는 좀 애매하다는 것이다
.

그래서 이번 산행은 송광사를 산행 들머리로 하여 두 암자를 둘러보는 것으로 정했다.
쌍향수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한 법정 스님의 향기로운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이 코스에
,
조계산의 명물 보리밥집을 넣어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비단에 꽃을 더한 격이었다
.

주말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산행 날인 토요일은 날씨가 좋았다.
보성 IC를 빠져나와 송광사로 가는 18번 국도는 언제 달려도 아름다운 길이다
.

이차선 도로 길가에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즐비하고 벚꽃이 활짝 피어서 드라이브하기에 참 좋은 길이다
.

 

송광사


송광사는 한창 여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좀 어수선한 분위기다
.
우화각과 침계루를 사진에 담고 곧장 산행길에 나선다
.

경내를 빠져나와 등산로 안내 이정표를 따르니 수석정 삼거리다
.
이곳에서 선암사와 천자암으로 길이 갈린다
.

직진하여 천자암 쪽으로 향하니 축구 골대가 있는 제법 넓은 운동장이 나온다
.
, 스님들도 운동을 하는구나. 그렇지 용맹정진 수도를 하려면 몸도 건강해야겠지
.

잠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길로 접어든다
.
운구재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은 인적마저 끊겼다
.

아직 헐벗은 채 서 있는 나무들은 곧 연둣빛 이파리들을 밀어 올리리라
.
운구재에서 천자암까지는 40여 분 정도 산 중턱으로 난 길을 걸어가야 한다
.


천자암 가는 길


크게 오르막내리막이 없는 편안한 길이다.
호젓한 산길 길섶에는 수줍은 듯 핀 보랏빛 얼레지만이 산꾼을 반길 뿐이다
.


천자암과 쌍향수


이윽고 고즈넉한 천자암 경내에 들어서니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쌍향수가 눈에 띤다
.
천연기념물 제88호인 쌍향수는 수령이 800년이나 된다는 곱향나무인데,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수도를 끝내고 귀국할 때 짚고 온 지팡이를 나란히 꽂은 것이 이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

쌍향수는 참으로 오묘하게 생겼다. 겉껍질이 매끈한 속 줄기를 용틀임하듯이 감싸고 있다
.


쌍향수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이 향나무를 보고
운우지정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한 편 썼다
.
서로 부둥켜안고/칠팔백 년은 족히 살아왔건만/천연기념물 88/송광사 천자암의 쌍향수
/
가까이 실눈 뜨고 살펴보면/온몸을 꽈배기처럼 88 꼬면서도/알몸의 살갗 하나 닿지 않았다
//
하늬바람만 불어도/서로의 뼈마디 비걱거릴 법도 한데/조계산의 늙은 곱향나무 두 그루/그 참, 절묘하다
/
맨살을 맞비비지 않고도/두 몸 아슬아슬한 경계에/저리 희푸른 아침 구름이 오르고
/
저물녘 향내의 안개비가 내리다니!/무산(巫山)의 달 뜬 애인이여, 우리 아직 멀었다


천자암을 빠져 나와 송광굴목재 쪽으로 향한다
.
헬기장을 지나면 송광굴목재 갈림길이 나온다
.

배도사 대피소 쪽으로 길을 잡는다
.
이 길에는 얼레지가 지천으로 피었다. 얼레지 꽃동산이다
.


나목(裸木) 그림자


잠시 길가 바위에 앉아 주변 풍경을 보니 좁은 산길에 나목
(裸木)의 그림자가 누워 있다
.
그림자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이렇게 다 벗어 버리니 얼마나 홀가분하냐.’.

맞아
, 오늘은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한 법정스님의 맑은 향기를 좇아가는 길이지.
(), (), () 삼독(三毒)에 물든 어리석은 중생이 산에 오를 때마다 비우고 간다고
말은 하지만
, 속세에 내려가면 다시 욕심껏 가득 채우는 것을.

드디어 송광굴목 삼거리에 닿는다. 좌측은 송광사로 우측은 선암사로 가는 길이다
.
이 길이 바로 송광사와 선암사를 연결하는 조계산의 중심 산길이라고 할 수 있다
.


배도사 대피소


여기서 배도사 대피소까지는
10여 분이 걸린다
.
대피소 앞 이정표를 보니 이곳이 선암사와 송광사의 딱 중간 지점이다. 거리는 각각 3.3km
.




조계산 보리밥집


10
여 분 후 보리밥집에 닿는다. 많은 산꾼들이 평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
보리밥을 주문하여 나물 넣고 쓱쓱 비벼 먹는다
.

시장기를 반찬으로 고픈 배를 채우니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
.
옛 선인은 보리밥 풋나물을 실컷 먹고 자연에서 노니나니 그 밖의 나머지 일은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보리밥집을 나서서 선암사 쪽으로 진행한다. 곧바로 굴목교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좌측 작은굴목재로 향한다
.
이 길은 맑은 물이 흐르는 장박골 계곡을 끼고 가는 길로 장박 1,2교를 지나 장박3
교를 건너면
작은굴목재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곳에 닿는다
.



작은굴목재


작은굴목재에 오르니 몇몇 산꾼들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이곳에서 장군봉까지는 0.8km
.

가풀막진 길을 올라채면 정상 못 미쳐 배바위가 나온다. 밧줄을 잡고 배바위에 오르니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
선암사와 멀리 주암호가 한눈에 보인다
.



배바위 조망과 장군봉


조망을 하고 내려와 마지막 가풀막진 길을 올라채니 돌탑과 아담한 정상석이 있는 장군봉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거의 5시간이 흘렀다. 좀 서둘러야겠다
.

장박골 정상까지 내처 달린다. 장박골 정상은 접치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
키를 넘는 산죽이 마치 성벽처럼 둘러쳐진 길을 따라가니 장박골 삼거리다
.

조계산 산길은 유난히도 산죽이 무성하다. 이곳까지 장군봉에서 40여 분 정도 걸렸다
.
여기서 연산사거리 쪽으로 난 오르막길로 100여 미터쯤 진행하면 우측으로 갈림길이 나온다
.

까딱 잘못했다가는 길을 놓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하지만 모 지방 신문사의 표지기가 붙어 있으니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길을 놓칠 염려는 없다
.

갈림길에서 삼각점이 있는 786봉까지는 10여 분이면 닿는다
.
다시 우측 길로 진행하면 막다른 봉우리에 닿고 여기서 왼쪽으로 산죽 무성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

나뭇가지 사이로 주암호가 보인다. 이 길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길이다
.
허리까지 올라온 산죽들이 자꾸 번뇌(煩惱)처럼 달려들어 성가시게 한다
.


불일암 하산길 산죽


끈질기게 달려드는 산죽들을 뿌리치고 40여 분 정도 내려가면 소로(小路)와 만난다.
소로(小路)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곧이어 큰 길과 만나는데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

여기서 송광사 쪽 길을 버리고 직진하여 두서너 굽이 산길을 휘감아 돌면 불일암에 닿는다
.



불일암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불일암은 법정스님의 무소유
(無所有)
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서인지
참으로 소쇄
(瀟灑)하다는 느낌이 든다
.

스님이 가꾸었음직한 작은 꽃밭에는 흰 수선화가 피어, 스님 대신 산꾼을 반겨준다
.
불일암 귀퉁이에 놓인 빠삐용 의자가 스님의 무소유(無所有) 정신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

의자 앞 후박나무에는 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
.
마음속으로 스님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축원한다
.

무소유길


아쉬운 마음으로 청정한 불일암을 빠져 나와 우측 길을 따르면 대나무와 편백나무 무성한 길이다
.
이른바 무소유(無所有)의 길이다
.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
스님이 쓴 무소유(無所有)’라는 글의 마지막 구절이다
.

스님의 말씀이 죽비(竹篦)가 되어 속세에 찌든 산꾼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

송광사 매표소를 빠져 나오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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